지구 재난에서 살아남기
한민족 시원 역사 속에 감춰진 개벽의 비밀 코드 본문
왜 한민족 역사를 알아야 하는가?
이번 호에는 본격적인 개벽 실제 상황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한민족사韓民族史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혹자는 개벽 상황과 우리 한민족의 시원사가 무슨 큰 관련이 있느냐고 물을 수 있다.
가을은 봄⋅여름의 성장 과정 전체에 관한 결과로 열매를 맺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이미 우주론을 통해 이해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인간 농사’를 짓는 천지의 섭리 또한 이번에 맞이하는 가을개벽을 통해 봄여름철 인간 역사의 모든 과정에 관한 결과로 그 열매를 맺게 되는데, 바로 인간 역사의 시원이 되는 부분에 우리 한민족의 역사가 자리하고 있다. 현 문명의 뿌리가 되는 시원사, 그게 우리 한민족 역사이다. 이것을 단순히 민족주의니 국수주의니 하는 편협한 시각으로 보면 개벽 진리를 제대로 알 수 없다.
인류 구성원 전체의 생존과 살고 잘되는 길이 이 가을개벽에 담겨 있다. 개벽을 제대로 알고 대비하기 위해서 우주 통치자 상제님께서 이 땅, 한민족의 혈통으로 오신 것도 다 큰 뜻이 있는 것이다. 이제 깊은 상처를 안고 뿌리가 송두리째 뽑혀 나갈 위기에 처한 우리 민족의 뿌리 역사를 찾아가 보겠다.
인류 시원 역사인 한민족사의 뿌리부터 바로 세워야 개벽의 전령자로 오는 시두時痘(두창, 천연두) 대발 문제와 가을개벽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방안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을개벽의 비밀 코드 - 시두時痘
우리는 가을 대개벽이 오는 대자연의 변화, 그 깊은 진리 세계를 탐험하고 있다. 우리 인류는 좋든 싫든. 알든 모르든, 머지않아 자연과 문명과 인간의 대개벽 상황 속으로 휩쓸려 갈 것이다. 선천 상극 역사를 끝맺고 새로운 하늘땅의 새 문명을 열어 주시기 위해 인간의 몸으로 강세하신 증산 상제님은 개벽이 오는 실제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셨을까?
대개벽 소식을 미리 알고 대비하기 위해, 자연과 문명과 우리 인간의 삶에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들이 벌어지는지 앞으로 남은 연재 기간 동안 살펴볼 것이다. 이번에는 그 전초전에 해당하는 사건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상제님 말씀을 들여다보자.
가을개벽 전 시두가 대발한다
무신戊申(1908)년에 하루는 최창조의 집에서 성도 수십 명을 둘러앉히시고 …… 그다음 날 밤에 담뱃대 진을 쑤셔 내시며 덕겸에게 “한 번 만에 잡아서 놓치지 말고 뽑아내어 문밖으로 내버리라.” 하시거늘 덕겸이 명하신 대로 하니 온 마을의 개가 일시에 짖어 대는지라, 덕겸이 여쭈기를 “어찌 이렇듯 개가 짖나이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대신명大神明이 오는 까닭이니라.” 하시거늘 또 여쭈기를 “무슨 신명입니까?” 하매 말씀하시기를 “시두 손님인데 천자국天子國이라야 이 신명이 들어오느니라. 내 세상이 되기 전에 손님이 먼저 오느니라. 앞으로 시두時痘가 없다가 때가 되면 대발할 참이니 만일 시두가 대발하거든 병겁이 날 줄 알아라. 그때가 되면 잘난 놈은 콩나물 뽑히듯 하리니 너희들은 마음을 순전히 하여 나의 때를 기다리라.” 하시니라. (도전道典 7:63)
개벽 실제 상황의 비밀을 푸는 핵심 코드
- 시두, 천자국, 간 도수
이 말씀을 구절마다 들여다보면 가을개벽에 진입하는 초기 상황을 해독할 수 있다. 즉, 개벽의 실제 상황에 들어가기 직전에 이 땅에서 개벽의 불길을 댕겨 급진전시키는 무언가가 일어나리라는 말씀이다. 바로 시두時痘(천연두天然痘, 두창痘瘡, 마마媽媽)와 천자국, 간艮 도수! 가을개벽의 비밀을 푸는 핵심 코드이다. 이 세 가지의 뜻과 상호 관계를 대도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으면 개벽의 땅 한반도의 운명을 들여다볼 수 있으며, 가을개벽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되는지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다.
심판의 여신, 시두時痘
시두는 다른 전염병과 달리 인류사에 자주 등장한다. 인도는 고대부터 ‘시탈라 마타Shitala Mata’라는 이름의 여신으로 시두를 숭배해 왔다. 시두가 터질 때는 신명들이 시두 기운인 ‘천화天花’를 뿌리고 다닌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은 ‘마마신’, ‘시두 손님’이라 존대하면서 얼른 지나가기를 바랐다. 이 시두는 세계사를 주도한 왕과 황제들의 목숨을 앗아 갈 정도로 제국의 건설과 문명의 붕괴 등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역사의 주인이 바뀌는 분기점이 되기도 했던 ‘심판의 여신’이었다.
최근 의학계에서는 시두가 인류 역사상 최고의 사상자를 낸 전염병일 뿐 아니라 최초의 전염병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즉 농경 문화와 목축업, 문명의 형성 그리고 대규모 전염병의 발생은 동시대에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전염성 질병 대부분은 사람과 접촉하는 동물로 오기 때문이다.
전염병은 문명의 시작과 함께
최근 연구 성과를 보면 전염병은 대략 5,500년에서 6,000년 전에 발생했다고 한다. 이 시기는 전 세계 인류 문명의 시조인 태호 복희씨太皞伏羲氏가 살았던 배달국倍達國 시대이다. 우리나라 고대사가 기록되어 있는 도가 사서 『환단고기桓檀古記』 중 배달국 시대를 다룬 〈신시본기神市本紀〉를 보면 환웅 천황께서 우사 왕금에게 소, 말 등 짐승을 모아 목축牧畜을 하도록 했다고 전한다. 이후 시기인 5,100년 전의 신농씨神農氏를 동양 의약의 시조라고 한다. 이는 이미 그 이전 복희씨의 왕조로부터 전염병 문제가 생겼다는 증거가 된다.
태호 복희씨는 배달국 5대 태우의 환웅의 막내아들로서 서방을 개척하고 현 인류 문명을 일으킨 ‘문명의 개조開祖’이시다. 당시 복희씨는 수렵과 어로를 가르치고 가축, 특히 소를 길러 천신께 제사를 지냈다. 이때 이미 관개수로와 가축을 이용한 농경법이 발달하면서 인구가 증가하고 도시 국가가 성립된 것이다.
시두가 사라졌다
그런데 시두 바이러스는 소[牛]에서 왔다. 결국 농경 문화의 발달과 함께 인간이 소를 기르면서 전염병의 제왕 시두가 인간 역사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 시두를 치료할 수는 없지만, 예방을 하는 법이 근대에 나왔는데 바로 종두법種痘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종두법은 우두牛痘를 인체에 접종해서 면역성을 발생시켜 두창痘瘡 즉 시두의 감염 발병을 예방하는 일종의 예방 접종법으로, 그 근원이 소이다. 1798년 영국인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가 연구한 것인데, 극히 효과가 있는 예방 접종법으로 알려져 인류는 이때부터 두창으로부터 구원을 받게 되었다.
현재 백신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인화 우두묘人化牛痘苗라고 하는데, 시두는 1977년 소말리아에서 발생한 이후 지구촌에 더는 발병하지 않았다. 1980년 5월 8일 세계보건기구는 제33차 총회를 통해 “지구상에서 천연두라는 질병은 완전히 사라졌다.”라고 선언했다. 가장 혹독하게 인간을 괴롭혀 온 죽음의 사자 마마 여신에게 인류의 이름으로 사망 선고를 내린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79년부터 예방 접종을 중단하고, 1993년 11월 25일에는 제1종 법정 전염병 목록에서 삭제했다. 그야말로 시두는 사라진 병, 인류에게 정복된 병으로 인식되었다.
시두 재발의 우려
그러나 상제님께서는 “시두가 없다가 때가 되면 대발한다.”라고 하셨다. 이 말씀을 입증이라도 하듯 21세기 벽두부터 시두(천연두)라는 이름이 다시 전 세계에 공포의 대상으로 떠오르게 한 사건이 발생한다. 2001년 9.11 테러 사건 이후 연이어 터진 탄저균 테러가 전 세계를 생화학 테러의 위험 속으로 몰아넣으면서, 생화학 무기로 개발⋅사용될 가능성이 제기된 시두의 재발 우려가 커진 것이다. 이에 우리나라도 2002년 5월 12일 시두를 다시 법정 전염병으로 지정하였다.
시두는 치료 약이 없다. 오직 예방뿐이다. 시두에 대한 면역이 없는 상태에서 발병하면 30% 이상의 치사율을 나타낸다. 전 세계를 전염병 공황에 빠지게 했던 코로나 팬데믹에서도 치사율은 2% 내외였는데 시두가 대발하면 그 여파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시두는 바이러스의 일종으로 소화기나 호흡기를 통하여 감염되기 때문에 공기 중으로 전파되며, 면역 기능이 약한 틈을 타 10일 정도의 잠복기를 거쳐 증상이 나오기 시작한다. 현재 생화학 무기로 개발된 시두 바이러스는 대부분 바이러스의 게놈을 변형시켜 종래의 것보다 치사율이 훨씬 높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천자의 나라
천자국이라야 들어오는 시두
이 시두가 이제 대발大發한다고 하셨다. 그것도 천자국天子國이라야 시두 신명이 들어온다고 증산 상제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이는 조선이 본래 하느님(상제님)의 아들인 천자天子가 다스리는 ‘천자국’의 문화 위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시두가 들어온다는 말씀이다.
시두는 단순한 전염병이 아니다. 천지 추살 기운, 서릿발 기운을 몰고 오는 길 안내자이다. 인류사 최초의 병으로 추정되는 시두 대발은 지난 선천 역사의 끝과 새 역사의 시작을 암시한다. 상제님의 말씀으로 보면 원시반본의 섭리에 따라 앞으로 시두가 우리 조선에서 대발함으로써 조선이 본래 천자국 위상을 회복하여 새 문명의 종주국으로 우뚝 서게 된다는 것이다.
천자 문화의 본향은
천자 제도의 내력에 대해 밝힌 채옹(132~192)의 『독단』
천자는 ‘천제지자天帝之子’의 줄임말로 ‘하나님의 아들’, ‘우주의 주재자이자 천상의 통치자天帝이신 상제님의 아들’을 칭하는 말이다. 이 천자가 다스리는 나라를 예로부터 천자국이라 불러 왔다. 천자는 서양에서 말하는 ‘신의 아들(Son of God)’과 서로 통하며, 신교神敎를 신앙했던 동방 문화에서는 ‘국가의 통치자’를 의미했다. 천자는 본래 제정일치祭政一致 시대의 통치자이다. 천자는 인간 세계를 대표하여 하늘(상제님)에 제사를 올렸고, 제후들은 천자의 명을 받들어 사역했다.
후한에서 위촉오 삼국 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의 천재 문인 채옹蔡邕은 저서 『독단獨斷』에서 천자 제도의 근원에 대해 “천자는 동이족 임금의 호칭이다. 하늘을 아버지, 땅을 어머니로 섬기는 까닭에 하늘의 아들이라 한다.(天子, 夷狄之所稱, 父天母地, 故稱天子)”라고 하여 천자 제도가 동방족 문화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순舜임금은 보위에 등극할 때 태산에 올라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는 봉선封禪 의식을 한 후 ‘동방의 천자’를 찾아가 조근朝覲하는 예를 올렸다. 이 내용이 『서경書經』에 “동순망질東巡望秩 사근동후肆覲東后”라고 기록되어 있다. ‘동쪽으로 순행하여 산천에 제를 지내고 마침내 동방의 임금을 알현하였다.’는 뜻인데, ‘근覲’은 제후가 천자를 뵙는다는 의미로 하현상下見上,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찾아뵙는 것을 말한다. 이때 순임금이 알현한 동방의 천자는 누구일까? 바로 단군조선檀君朝鮮의 초대 단군왕검檀君王儉이다.
단군조선과 요堯⋅순舜⋅우禹의 관계
이때 단군왕검은 당요唐堯와 나란히 천하에 군림하고 있었고, 두 민족 간의 영토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단군 성조께서는 동이족이었던 우순虞舜에게 명하여 영토를 나누어 다스리게 하고 군사를 보내 주둔시키며 요를 정벌하고자 하니, 마침내 요가 통치력이 다해 굴복하고 순에 의지해 목숨을 보전하고 나라를 넘겨주게 된 것이다. 즉 유가에서 가장 이상적 성군으로 칭송해 온 순임금은 단군조의 제후였다. 이런 사실은 『환단고기』 「태백일사太白逸史」에 기록되어 있다. 현재 우리가 우리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폐해로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가을개벽의 전령자인 시두 대발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의 흐름은 요임금 말부터 순임금 때까지 이어진 9년 홍수로 인해 변화되었다. 당시 중원 지역이 양쯔강 등의 범람으로 큰 위기에 처하자 단군조선에서는 2세 단군인 부루태자를 파견하여 순임금의 관리였던 하우夏禹에게 산을 다스리고 물을 다스리는 비결인 오행치수법五行治水法이 담긴 금간옥첩金簡玉牒을 전수했다. 이를 바탕으로 치산치수에 성공한 우는 이후 민심을 얻어 하夏나라를 건국하게 된다.
그런데 이 금간옥첩은 치수의 요결뿐 아니라 나라를 다스리는 천자의 도道와 단군조선의 정치제도, 문화가 수록된 국가 경영 지침서였다. 여기에 나라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 큰 법도, 홍범구주洪範九疇의 내용도 실려 있었다. 홍범구주의 다섯 번째가 황극皇極 사상인데, 이 황극으로부터 천자天子 사상이 나왔다. 즉 천자 제도의 기틀, 동양 문화의 근본정신이 담겨 있는 금간옥첩이 전해짐으로써 단군조선의 천자 문화가 본격적으로 중원으로 흘러 들어간 것이다.
이후 하나라에서 상商(은殷)나라, 다시 주周나라로 교체하는 과정에 단군조선이 깊숙이 관여하게 되는데 이는 『환단고기』 「단군세기」 내용을 참조해 보기 바란다. 춘추전국 시대를 끝낸 진秦나라의 진시황秦始皇은 마침내 천자를 참칭하면서 스스로 3황 5제에서 따온 황제皇帝라 칭했다. 고대 중국을 천자국으로 묘사한 것은 모두 한漢나라 이후 중국 사가들에 의한 조작이며 윤색이다.
개벽의 심장부 천자국 조선
천자 문화의 본향인 우리는 단군조선 이후 고려高麗에 이르기까지 천자 칭호가 계승되었고, 조선朝鮮 전기까지도 자주적인 모습을 보였다. 고구려의 전신인 북부여北夫餘를 건국한 해모수解慕漱가 스스로 ‘천제자天帝子’라고 한 기록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그 후 해모수의 후예인 고구려高句麗 창업 시조 고주몽高朱蒙 역시 동부여에서 탈출하여 올 때 송화강 강물로 앞이 막히자 ‘아시천제지자我是天帝之子, 나는 상제님의 아들이다!’를 외쳤고, 구원군에 의해서 무사히 위기를 넘기게 되었다. “나는 상제님의 아들이다! 나는 천자다!”라는 주몽의 이 말은 만주 집안현集安縣에 1,500년 동안 굳건히 서 있는 광개토태왕비문에 분명하게 남아 있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하늘(님)의 자손, 천제의 아들[天子]라는 의식을 갖고 성신의 가르침[神敎]을 받아 내려 인류를 널리 이롭게 한 천손天孫 민족이었다.
그러나 이후 동방 조선은 개벽의 땅 한반도로 내몰리면서 천자의 칭호를 잃어버렸고, 19세기에는 국력이 급격히 쇠약해져서 한반도는 제국주의 세력의 각축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때 본래 역사 정신의 푯대를 세워 천자국의 황통을 회복하려는 비장한 마지막 시도가 있었다.
1897년 조선의 고종高宗은 천자국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국호를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연호를 ‘광무光武’로 하며, ‘원구단圜丘壇’을 제천단으로 중수하고 천상 상제님께 한민족 전통인 천자 등극을 고하는 천제를 올렸다. 이때는 인간으로 오신 상제님께서 천하를 유력하실 때다. 원시반본의 천지 섭리 때문에 이 땅에 강세하신 상제님은 “내가 있는 곳이 천하의 대중화大中華”(도전道典 2:36:8)라고 하셨다. 알고 보면 고종 황제는 상제님의 천명을 받들어 천자국의 종주로서 세계만방에 천자국임을 선포한 것이다.
개벽과 구원의 땅, 한반도 간 도수
인류의 꿈은 간 도수艮度數
우리 한반도는 가을개벽의 출발점이자 구원의 발원처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가을 대개벽은 시두가 터지는 것을 신호탄으로 하여 창생의 명줄을 끊는 참혹한 대병겁이 시작되는 곳이다. ‘처음을 살펴서 근원으로 돌아간다.’는 원시반본原始返本의 가을개벽 정신에 따라, 병겁은 한반도에서 처음 시작되어 전 세계를 3년 동안 휩쓸게 된다.
이때 우리 대한은 개벽 실제 상황에서 인류를 건져 내는 구원의 천명을 실천함으로써 인류 문화의 도주국道主國으로 다시 부상하게 된다. 그리하여 여러 제후국을 거느리는 천자국의 위상을 되찾게 되는 것이다. 이를 바로 ‘간艮 도수’라고 한다. 가을개벽에 대한 이해는 새 하늘 새 땅이 열리는 이법과 구원의 섭리인 간 도수에 대한 깨달음의 문제로 귀결된다.
간艮괘의 의미
간 도수를 이해하려면 『주역周易』의 팔괘八卦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자연의 변화 이치가 함축되어 있는 팔괘 중 간艮괘(☶)는 ‘열매’를 뜻한다. ‘초목의 열매’, ‘인간의 열매’, ‘문명의 열매’를 모두 포함한다. 종국적으로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간의 과정과 노력은 아무 소용이 없는 헛된 일이 되고 만다. 그래서 간 도수란 ‘인간과 자연과 문명의 추수 정신’을 상징한다. 이 열매는 다음에 올 새봄을 준비하는 ‘씨종자’다. 열매 속에 있는 씨앗을 땅에 심음으로써 그로부터 사계절로 변화하는 생명의 한 주기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한 시대(선천)의 끝매듭과 우주의 새로운 시대(후천)의 시작이 바로 이 간방艮方에서 이루어진다. 간방은 ‘지구의 동북방東北方’을 의미하며 우리가 사는 ‘한반도韓半島’를 가리킨다. 한반도는 지구의 핵, 중심 자리이다. 이 지리地理의 현묘한 수수께끼를 처음으로 밝혀 주신 분이 바로 증산도의 안운산 태상종도사님이시다.
동방 조선 땅에서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가 종결되고 가을철의 새 역사가 출발한다. 선천 성자들의 모든 꿈과 소망이 이곳 한반도에서 성취된다. 이것이 바로 ‘간 도수’의 결론이다. 왜 천지의 주인이신 상제님께서 이 땅에 강세하셨는가? 이에 대한 우주 원리의 해답이 바로 간 도수이다.
간 도수의 시작은 위만 정권의 수립
이 간 도수의 시작은 언제부터일까? 그것은 우리가 현 국사 교과서에서 배운 위만조선衛滿朝鮮에서 비롯된다. 실제 위만은 단군조선의 왼쪽 팔(지금의 산둥반도 일대를 다스리던) 번조선의 준왕을 왕검성에서 쫓아내 위만 정권을 세운 인물이다. BCE 194년 이후 조선의 여러 유민이 해로를 통해 또는 도보로 대륙에서 반도로 역사 무대를 옮겨 왔다. 그런데 이 과정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참담하다. 역사를 왜곡하고 제 뿌리를 잡아먹는 천고에 없는 불의와 패악으로 민족의 혼이 완전히 말살되고 소멸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시원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
그렇다면 가을개벽을 앞둔 이때 환국-배달-조선의 고대 역사를 아는 것이 왜 중요할까?
첫째는 잃어버린 인류의 시원 문화이자 우리 민족의 뿌리 문화인 단군조선의 신교 문화, 그 핵심인 ‘삼신 문화와 칠성령 문화’를 되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단군조선이 망하고 이를 단순히 신화로 압살하고 우리 머릿속에서 곰의 자손이라는 미신이 떠나지 않는 한 상제님의 신교 문화는 부활할 수 없다. 선천 성자들이 하나같이 상제님의 도와 천명을 받고 이 세상에 인간으로 내려와 상제님 강세와 가을개벽을 예고했는데, 마침내 탄강하신 상제님의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게 된 것이다.
둘째로는 상제님 도법으로 간 도수 섭리와 인류 문명의 뿌리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단군조선 멸망 이후 찌들어 버린 민족혼이 이제 드디어 천자국의 위상을 회복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두를 신호탄으로 시작하는 가을개벽 실제 상황에서 역사 대국 ‘대한’은 인류 구원의 천명을 실현하면서 지구촌의 인류 문화를 통일하고 나아가 궁극의 이상 세계인 대광명의 ‘환국’을 건설하게 되는 것이다.
지나간 역사를 아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는 그 출발점이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이다. 이는 인류 역사의 본모습을 제대로 알게 되는 계기가 된다.
간추려 본 우리 대한의 국통맥
단절된 역사, 말살된 민족!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선생의 말처럼 우리 역사는 실로 ‘무정신의 역사’다. 고고학적 발굴로 고대사에 대한 일부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지만, 한민족 역사와 문화의 근본적인 복원은 전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해방 이후 일제가 남긴 식민 사학의 깊은 병독은 지금까지 치유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역사학계는 실로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의 줄임말)이다. 실증적이고 유물론적인 연구 태도만을 고집하고 있어서,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와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역사의 시비는 역사적 사건 등에 대해 역사를 보는 이의 사관을 바탕으로 다양한 해석을 통해 가려져야 하는데, 우리 역사학계는 그렇지 못하다. 이런 학문적 시비는 차치하더라도, 천지 대도 차원에서 후손 된 도리로 살펴보자면,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가 있다. 오늘날 그대가 누리는 삶의 바탕에는 무수한 조상 선령들의 희생이 전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대는 그 숱한 역사의 증거요, 그들의 꿈을 이루고 새 역사를 만드는 주인공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한국 역사학계를 비롯한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해서는 지면 관계상 다른 기회에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우리 민족의 바른 국통맥을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정리하는 작업에는 『부도지』, 『환단고기』, 『규원사화』 등 사서들로부터 도움을 얻은 바가 컸음을 밝혀 둔다.
인류 문명의 뿌리 시대, 환국桓國
우주의 봄철 인간은 어디에서 태어났을까? 아프리카라는 말도 있지만, 실제로는 북녘의 감방坎方에 해당하는 바이칼 호수 인근이다. 바이칼 호수는 신비롭게도 모체의 양수羊水와 그 성분이 유사하다고 한다. 이곳에서 인간이 나왔고, 환국 이전 마고성麻姑城도 이곳에 있었다. 그 후 이들이 중앙아시아로 이동하여 남북 5만 리, 동서 2만 리에 퍼져 나갔고, 주된 세력은 진震 동방東方에서 환족桓族을 중심으로 한 문명 집단인 환국桓國을 세워 인류 문명을 크게 열었다가, 이후 간방艮方 한반도로 들어가 천지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환국의 지도자를 환인桓仁이라 했는데 초대 안파견安巴堅 환인부터 지위리智爲利 환인까지 일곱 분이 계셨고, 총 3,301년 동안 존속한 장수 문화의 황금시대였다. 환국은 천지 광명의 신성을 대각하는 신선 문화의 원류로 12분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12분국 중 수밀이국과 우루국은 지금의 이라크 지역에서 서양 문명의 뿌리인 수메르 문명 태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 뒤 인구가 증가하고 급격한 기후 변동이 발생하면서 환국의 정통 계승자로 동방의 새 역사를 개척하는 이가 나왔으니 바로 거발환居發桓 환웅이시다. 환국의 지위리 환인께서는 삼위산과 태백산을 두루 살피시고 동방 태백산(백두산) 일대가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한 곳’이라고 하여 천부인天符印과 함께 문명 개척단 제세핵랑군濟世核郞軍 3천 명을 파견하셨다.
환웅께서는 이들과 함께 동방 신시神市 배달국倍達國을 개국하였고, 일신강충一神降衷(하나님이 참마음을 내려 주셨으니), 성통광명性通光明(너의 본성이 광명을 통하게 하라), 재세이화在世理化(신교의 삼신 진리로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하여), 홍익인간弘益人間(인간 세계를 널리 이롭게 하라) 등의 가르침을 전하셨다. 배달국의 후손들인 오늘의 한국인은 이러한 가르침을 그로부터 약 1,600년 뒤에 세워진 단군 임금님의 개국 이념으로 잘못 알고 있다.
신시 배달국은 동방 문명의 뿌리로 이때 농경, 의약, 교역 등이 시작되어 발전하였다. 총 18세 환웅천황님께서 1,565년간 다스려 번창한 신시 배달 문명은 신교의 우주관을 한민족 삶의 이념으로 뿌리내려 주었다. 특히 14세 자오지慈烏支 환웅은 일명 치우천황蚩尤天皇으로 불리는 탁록대전의 주인공이자 서방 한족에게 동방 신교와 천자 문화를 전해 준 대제왕이다.
상고 문화의 최전성기, 단군조선檀君朝鮮
단군조선의 시조 단군왕검檀君王儉은 웅족熊族이다. 이 웅족은 거발환 환웅이 동방 백두산 문명을 개창할 당시 백두산 일대 만주 지역에 거주하던 족속이었다. 웅족과 호족은 거발환 환웅이 이끄는 환족의 발달한 문물을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다가 자신들도 삼신상제님의 계율을 따르는 밝은 백성이 될 수 있기를 간청했고, 이에 환웅은 100일을 기원하며 수도 생활에 들어가게 했다. 이때 쑥 한 심지와 달래 스무 개를 내려 주었다. 이때 호족은 참지 못하고 뛰쳐나갔고, 웅족은 굶주림과 추위를 참고 계율을 지켜 삼신 광명의 도를 깨우쳤다. 이 이야기가 우리가 곰의 자손으로 여기게 되는 단군신화로 왜곡되어 내려온 것이다.
단군왕검께서는 14세 때 웅씨 부족의 왕을 보좌하는 비왕裨王으로 24년간 국사를 섭정하면서 경륜을 쌓다가 배달국 말기의 혼란을 바로잡고, 천제의 아들로 추대되어 송화강 아사달(현 하얼빈)에서 단군조선檀君朝鮮의 초대 단군으로 제위에 올랐다. 단군조선은 청동기 문명과 신교 문화로 강성했다. 단군조선은 본국인 진한(진조선)의 중앙 정부와 산둥반도 일대의 번한(번조선), 한반도 일대의 마한(막조선)까지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로 운영되었다.
이후 22세 색불루 단군에 이르러 백악산 아사달(현재 길림성 장춘)로 천도하였다. 색불루 단군은 정치 쿠데타를 일으켰기 때문에 자신의 근거지로 옮긴 것이다. 이때부터 병권을 주지 않았던 번한과 마한에 병권을 일부 나누어 주면서 삼한 체제에 동요가 서서히 일어나고 결국 이로써 멸망하게 된다. 이후 43세 물리 단군 말기 사냥꾼 두목 우화충의 반란이 결정적인 쇠망의 길로 이끌었다. 구물 장군에 의해 반란은 진압되었지만, 이때 국정 쇄신을 위해 국호를 조선에서 대부여로 개칭하였고, 장당경(요령성 개원)으로 천도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진한의 중앙 정부 권력은 크게 약화하고 번한과 마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면서 장군들의 반역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BEC 238년 47세 고열가 단군에 이르러 단군조선 2,096년의 장구한 역사는 막을 내렸다.
이후의 역사 전개 과정
단군조선이 문을 닫기 1년 전인 BCE 239년 해모수가 북쪽에 북부여北夫餘를 세웠다. 그리고 남쪽에는 BCE 195년 최숭이 평양에 낙랑국樂浪國을 세웠고, 조선의 유민들이 한강 이남에 남삼한南三韓을 세웠다. 이때가 1단계 남북국南北國 시대로 간 도수 실현을 위해 간방 땅으로 좁혀 들어오는 첫 발자국을 떼는 시점이었다.
이후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신라新羅, 가야伽倻가 각축을 벌이다 고구려 평양성이 나당 연합군에게 함락되자 대동강 이남 고구려인들은 신라新羅에 흡수되고, 만주 지역에서 대중상, 대조영 부자에 의해 대진국大震國이 세워지면서 2단계 남북국 시대가 열렸다. 3단계 남북국 시대는 지금 남북한南北韓의 분단 현실이다. 이 세 번에 걸친 남북국 시대의 전개 양상도 결국 간 도수에서 그 종지부를 찍게 된다.
우리가 살펴보는 『개벽실제상황』은 이후 좀 더 상세하게 분화되었다. 실제 개벽 상황의 전개 과정을 알기 위해서는 「다이제스트 개벽」을, 핵심적인 병란의 상황과 그 극복 방법에 대해서는 「생존의 비밀」을, 한민족과 인류의 창세 역사와 문화를 알고 싶다면 「한민족과 증산도」를 정독해 보기를 강력히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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