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환단고기』의 출간 과정이 미심쩍다고 한다. 그들은 1911년 계연수가 간행한 원본이 한 권도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 큰 혐의를 둔다. 이유립이 분실하였다는 원본이 보존되고 있다면『 환단고기』 위서 논쟁은 애초부터 성립될 수 없었을 것이다.
『환단고기』 위서론자들은『 환단고기』가 이유립의 창작이라고 주장한다. 이유립이 1979년(광오이해사본 출간 연도) 이전부터 월간지『 자유』27에 기고해 오던 글을 모아『 환단고기』를 간행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광오이해사본은 오형기의 필사본을 영인한 것이고, 오형기 필사본은 이유립의 소장본을 필사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유립이『 환단고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필사본이 만들어졌고(1949), 그 후 영인본이 나올(1979) 수 있었다. 따라서 위서론자들의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 1979년 이후 대중에게 알려진『 환단고기』는 이유립이 가지고 있던 계연수본이 재간행된 것임이 틀림없다.
위서론자들은 심지어‘ 계연수가 수안 계씨 족보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들어 계연수 선생을 가공의 인물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수안 계씨 종친회에 확인한 바에 의하면, 북한 출신 종친들 중 족보에서 누락된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느라 후손이 끊긴데다가 증언자도 없어 족보에 오르지 못한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계연수를 유령 인물로 매도하는 것은 역사적 상황을 두루 고려하지 않고 단편적인 사실 하나를 내세워 진실을 왜곡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계연수가 실존 인물이었음은 그 제자인 이유립의 증언과 여러 문헌에서 입증되고 있다.
위서론자들은 또 자유, 평등, 인류, 세계, 원시국가, 문화, 문명, 개화, 부권父權, 헌법 같은 근대어가 쓰인 것을 빌미로,『 환단고기』를 일제강점기때 독립 운동가들이 민족주의를 고양하기 위해 꾸며낸 책이라 한다. 그런데 이 어휘들은 고문헌에서도 발견되는 것들이다. 그 중에서 자유는‘ 자기가 주인이 되다’라는 뜻으로, 평등은 산스크리트어의 번역어로서‘ 차별이 없다’는 뜻으로 오래 전부터 사용되었다.『 환단고기』에 나오는 자유와 평등도 그러한 뜻으로 쓰인 것이다.
백번 양보하여 정말 근대어가 가필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환단고기』 자체가 완전 조작된 위서임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인류사의 여러 경전들을 돌이켜 보라. 수백 수천 년의 세월 속에서 끊임없는 가필과 재편집을 통한 보정 작업 끝에 오늘날의 경전이 되지 않았는가.『 주역』은 태호 복희씨로부터 공자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완성되었고,『 도덕경』은 왕필이『 덕경』과『 도경』의 본래 순서를 뒤집어 재구성한 것이다. 동양의학의 성서인『 황제내경』은 황제 헌원을 가탁하여 전국시대를 거쳐 한대에 성립되었고, 불교의『 화엄경』도 분리되어 있던 경전들이 수차례의 결집을 거쳐 후대에 합쳐진 것이다.
『환단고기』를 구성하는 다섯 권의 사서가 천 년에 걸쳐 쓰인 사실과 그 중 가장 나중에 쓰인『 태백일사』가 나온 지 400년이 지나『 환단고기』가 묶어졌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원래 다섯 저자들이 쓴 원본이 무수한 전란과 외세의 사서 강탈을 무사히 피하여 전해졌을 가능성은 아주 낮다. 계연수가 모은 다섯 권은 필사 과정에서 인물, 연대, 장소가 오착되기도 하고 부족한 내용에 가필도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때문에『 환단고기』의 일부 술어와 연대 표시가 사실과 다르거나 다른 사서들과 다소 어긋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인류의 시원 역사, 한민족의 국통 맥, 태곳적 한韓문화의 다양한 모습을 밝혀 주는『 환단고기』의 독보적인 가치가 전적으로 매도될 수는 없다.
그리고 계연수가 처음 펴낸 후 70년이 지나 이유립이 스승의 뜻을 받들어『 환단고기』를 다시 펴낼 때 가필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의도적인 조작과 첨삭이 아니라 누구의 손에 의해서든 꼭 이뤄져야 할 보정 작업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보정조차도 원전을 훼손하지 않는 아주 미미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위서론자들은 또한『 환단고기』에 삼신, 삼신일체, 영혼 등 기독교 교리 용어와 유사한 말들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환단고기』는 이 땅에 기독교가 전래된 이후에 날조된 책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삼신과 삼신일체는 한민족이 그 중심에 있었던 상고시대 신교 문화의 중요한 고유 술어이다. 우리의 고유한 문화 언어(삼신일체)를 외래 종교의 술어(삼위일체)와 혼동하는 것은 우리 상고사를 바르게 볼 수 있는 안목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교 삼신문화의 역사관’으로 한민족과 인류의 태고 역사를 기록하였음에도 이 땅의 학자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환단고기』의 비운은 뿌리 문화가 말살된 한민족의 참담한 역사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할 것이다.
그런데 위서 논쟁이 한창 들끓고 있을 때,『 환단고기』의 진실성을 확인해 주는 연구가 천문학 분야에서 이루어졌다. 1993년 서울대 박창범 교수가 고조선 13세 흘달단군 때 일어난‘ 다섯 행성 결집[五星聚婁]’ 현상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확인해 낸 것이다. 이렇게 현대 과학이『 환단고기』의 내용을 증명해 보였지만 위서론자들은 여전히『 환단고기』를 위서라 주장한다. 그러나 1900년대 초를 살았던 계연수가 어떻게 평균 250년에 한 번 나타나는 매우 드문 천문 현상을 인위적으로 계산해서 출현 시기를 정확하게 맞출 수 있었겠는가. 박창범 교수의 발표 이후 국내 사학자들 사이에서『 환단고기』에 대한 진지한 서지학적 검토의 필요성이 적극 제기되었다.
우리의 정통 사서인『 환단고기』를 제대로 읽지도 않은 채 위서라 하는 것은, 기존 사서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한국사의 진실을 묻어 버리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이제는 진위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환단고기』 기록 자체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를 통해 한민족의 잃어버린 역사와 문화를 회복하고 인류의 시원 역사에 대한 진실을 밝혀내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