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재난에서 살아남기
한국 고대문명의 세 왕조, 7천년 역사의 실체 본문
9천년 한민족사의 위대한 증언
안경전 종도사님의 『환단고기桓檀古記』 이야기
- CNN 전직 기자 조 카포라렐로Joe Capolarello와의 인터뷰-
◎ 4대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전에 환국의 고대문명이 존재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으며, 어떻게 그걸 믿을 수 있는가?
▶고대 한국문명의 존재를 입증해주는 것이 중국에서 발견된 홍산문화이다.[지도] 만리장성 밖에서 발굴된 홍산문화는 동북아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문명으로서 황하문명보다 시기적으로 앞서는 문명이다. 그래서 지난 백년 동안 발굴이 계속되어 온 이 홍산문화를 학계에서는 소위 ‘제5의 문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내몽고 유적지에서 발굴되기 시작한 이 문명을 해석할 수 있는 문헌과 사료가 중국에는 전혀 없어 발굴 현지에 가보면 홍산문화는 ‘신비의 왕국’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홍산문화는 중국 학자들이 말하는 소위 북방문화에 속하는 것으로 그 연대가 지금으로부터 5,500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동기 시대를 넘어 신석기시대에 걸친 문명이다.
이 새로운 문명의 흔적이 드러남으로써 우리들이 이제까지 생각해왔던 인류문명의 기원에 대한 고정관념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렸다. 그런데 이 문명을 해석할 수 있는 문헌이 한국의 고대사서인 『삼국유사』라는 책에 나온다. 옛날에 환국과 그 뒤를 이은 배달국이 있었다는 기록이다. 중앙아시아의 천산 지역에 있던 환국에서 환웅이 수천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동방에 와서 신시라는 수도를 정해 배달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그 후 단군조선이 배달에 이어 건국됐다는 내용이 간단히 소개돼 있는 것이다.
중국 문화권에는 홍산문화에 대한 문헌이나 기록이 없어서 이 문명을 발굴만 하고 해석을 전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1980년대에 우하량에서 나온 천제를 올리는 제단이라든지 여신을 모신 사원, 제사장의 무덤에서 나온 옥기류, 상당히 발전된 축성술을 보여주는 석성 등으로 미루어 중국 역사학자들도 고국古國, 즉 국가 성립의 모든 기반이 이미 당시에 확고히 있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하였다.[그림]
이처럼 황하문명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홍산문화 발굴로 중국 학계에서는 그들 중화문명의 태동을 새롭게 설명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중국의 중화문명이 황하문명 뿐 아니라 북방문화의 두 가지 요소로부터 탄생하였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한국과 중국의 일부 학자들은 홍산문화가 요하 유역에서 발견되었다고 해서 요하문명이라고도 하며 또 발해가 고대문명의 탄생과 교류에서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여 발해문명이라도 한다.
홍산문화의 발굴로 당혹스러워하는 것은 중국 학자들 뿐 아니다. 그 동안 일본 식민사학의 전통적 해석을 그대로 추종해온 한국의 강단사학계는 환국과 신시배달, 단군조선에 대한 기록을 신화로 부정해 왔다. 그러나 홍산문화의 발굴로 그들이 신화로 치부하고 있던 옛 한국문명의 존재가 역사적 사실로 드러났다. 1983년 우하량 유적지가 발굴되었을 때 그 동안 중국에서 신화로 믿어오던 삼황오제 시대가 실제로 발굴됐다고 대대적인 보도가 이루어졌는데 이 때 중국인들이 충격을 받았던 것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옛 한국문명의 존재에 대해 상세한 기록을 담고 있는 기록이 전해져 왔다. 바로 『환단고기』라는 이름의 문헌으로 6세기부터 16세기까지 천년에 걸친 시기의 다섯 사람이 남긴 역사기록들을 묶어 편찬한 책이다. 이 책에는 환국과 배달국, 단군조선의 역사에 대한 귀중한 기록이 실려 있다. 이처럼 홍산문화라는 고고학 유적과 역사 문헌 두 가지 모두가 옛 한국문명의 존재를 입증해주고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환국과 배달, 고조선의 역사는 결코 신화도 전설도 아니다.
여기서 하나 추가로 지적해야 할 것이 있다. 일본 제국주의 세력이 한반도를 침략하였을 때 한반도에는 구석기도 전혀 없다고 주장하였지만 일제가 물러난 이후 수만년 전의 구석기 유물들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어 한국에는 분명히 구석기시대가 존재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1만 2천년 전의 볍씨 알갱이도 발견되어 한반도에서 매우 오래 전에 벼농사가 지어졌음이 입증되었다. 이는 한반도에서 신석기시대가 1만 2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일반적으로 신석기시대로부터 인류 문명의 개화가 시작된다는 것이 학자들의 생각이다. 그러므로 지금으로부터 5천여년 전에 홍산문화와 같이 발전된 문명이 출현한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그림]
사실 황하문명을 건설한 것은 동이족이다. 상나라가 바로 동이족이 세운 나라였으며 중국인들이 중화문명의 시조로 생각하는 인물들은 실제로는 중국의 화하족이 아닌 동이족인 경우가 많다. 5500년 전의 인물로서 팔괘를 그려 우주와 세상의 변화를 설명하였던 동양철학의 시조 태호복희, 중국에서 농경과 의학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신농, 이들이 동이족이라는 역사 기록이 있다.
『환단고기』에서는 복희가 배달국의 왕자였다고 한다. 동이족은 내몽골로부터 만주와 하북성, 산동성에 걸친 중국 북방을 지배하였던 고대 한민족의 조상이다. 중국의 고대 사서에 동이족의 기록이 많이 나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중국문명이 동이족의 영향 하에 탄생하고 성장하였기 때문이다. 이 동이족이 홍산문화로부터 연원한 족속이었음은 물론이다. 용과 봉황을 함께 신성한 동물로 신봉하였던 용봉문화가 그것을 입증해준다.
◎ 홍산문화라는 지칭이 곧 고대 한국문명을 가리키는 이름인가?
▶일본마저도 한국의 전통 사서로 인정한 삼국유사에 근거해 볼 때 홍산문화라는 이름 역시 고대 한국문명을 가리키는 것(한국의 일부 학자는 발해문명이라고 부른다)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한국의 고대문명을 총체적으로 가리키거나 나타내는 이름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가운데 홍산문화는 현재 중국 내몽골 동남부, 요령성, 하북성 북부를 중심으로 발해 연안을 끼고 한반도까지 그 영역이 걸쳐 한민족이 이룩하고 발전시킨 문명이다.
요령성 우하량에서 발굴된 총묘단의 3대 유적과 함께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 1천년이나 앞선 것으로 판단되는 피라미드 유적(전면에 제단이 설치되었으며 폭 60m의 사각형 기단에 높이 10m 정도인 7층으로 아직 미발굴 상태이다)은 세계 각지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피라미드 문화의 원조로 해석되고 있다. 이집트나 중동 수메르 문명권의 지구라트, 중남미의 마야, 아즈텍 문명 등의 모든 초기 피라미드 유적은 통치자와 백성이 함께 하늘에 제사를 지낸 제천단이다. 그런 피라미드의 원형이 5500년 전 우하량에서 여신전과 함께 발굴돼 나온 것이다.
이 고대문명에 대한 기록이 중국에는 없기 때문에 중국의 학자들은 일단 홍산문화를 가리켜 ‘신비의 왕국’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의 공인된 기록인 『삼국유사』에서 홍산문화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는, 근거와 단초를 찾아볼 수 있다. 삼국유사가 『고기』古記라는 옛 사서를 인용해 전하고 있는 ‘옛적에 환국이란 나라가 있었다’(석유환국昔有桓國)는 기록이다.[그림]
최초의 나라 환국은 우주 광명을 체험하고 살았던 인류 최초의 문명국이었다. 그리고 한국의 이 고대문명, 곧 환국은 배달, 조선으로 그 나라의 정통성이 계승됐다. 지금부터 6천년 전 인류의 기후와 환경에 큰 변화가 있었는데 이때 환국은 동과 서로 분화됐다. 당시 동방으로 온 인물이 환웅이다. 환웅은 앞서 환국의 제왕인 환인으로부터 명을 받아 동방 백두산에 와서 도시국가 신시神市를 열었다. 한국의 고대사를 밝힌 역사서인 『환단고기』는 이렇게 환웅이 새로이 연 나라의 이름이 배달이라고 전한다. 그리고 다시 이를 계승하여 나중에 단군왕검이 조선이라고 하는, 세 번째 문명국을 건설했다.
단군조선은 옛 조선이라고도 불린다. 『삼국유사』는 중국 역사서인 『위서』(왕침 저, 삼국시대 조조의 위나라의 역사)를 인용해서 삼국유사가 지어진 당시(3세기 중반)로부터 거슬러 무려 2천여년 전에 단군이 있었고, 그가 아사달에 도읍하여 나라를 조선이라 했다고 기록한다. 이는 중국의 요堯임금(BCE 2350여년) 때다.
◎ 한국 고대문명의 정확한 위치는 어디며 그 영역은 어떻게 되는가?
▶한국의 고대문명은 환국 배달 조선으로 이어진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역사를 전해주는 사서가 『환단고기』이다. 『환단고기』에서는 인류 최초의 나라이자 동서 인류 최초의 문명국인 환국의 시조와 정치, 문화, 생활상, 그리고 고대 환국 사람들이 지녔던 삶의 가장 소중한 가치, 나라가 얼마나 지속되었는지 등을 소상히 밝혀주고 있다.
『환단고기』에 따르면 환국은 지금으로부터 9,200년 전에 건국됐다. 중앙아시아 동부, 천산을 중심으로 남북 5만리, 동서 2만리에 걸쳐 12나라로 구성되어 있었다. 동방 한민족의 두 번째 나라인 배달은 그 도읍이 신시로 지금의 백두산 근처로 기록돼 있다. 한민족의 세 번째 왕조인 단군조선은 중국의 흑룡강성 하얼빈을 중심으로 건국됐다. 그 수도인 아사달은 ‘아침이 밝아오는 광명의 땅’이란 뜻이다.
한국 고대문명은 환국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이 환국이 앞서 본 것처럼 지금부터 6천년 전 기후환경의 변화로 나비의 두 날개처럼 동과 서로 분화되는 극적인 대전환기를 맞이한다.[지도 10쪽] 이때 동방으로 분화되어 백두산 아래 터전을 잡은 것이 바로 배달이다. 그 강역의 중심이 된 산이 백두산이다. 반면 환국문명이 서쪽으로 분화되어 나가 자리잡은 것이 오늘 서양문명의 근원이 된 수메르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문명은 물론, 5천여년 전 이집트 문명,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등 모든 유럽과 중동 문화의 총체적 근원이 수메르 문명이란 것이 최근 밝혀졌다.
오랫동안 관련 학계에서는 서양문명의 근원인 수메르가 과연 5~6천년 전에 어디서 왔느냐가 관심이었다. 지난 1백여년 동안 수메르의 쐐기문자 수만 점이 발굴됐는데 일단 그 내용에 따르면 수메르인은 동방의 하늘산 즉 천산을 넘어왔다고 한다. 그러나 그뿐, 그동안 더는 알아낼 수 없었다. 천산과 수메르의 뿌리인 동방문명의 구체적인 실체가 전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홍산문화가 발굴되고 인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동북아에서 5,500년 멀리는 9천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홍산문화 유적이 지난 1백여년 동안 계속 발굴됐다. 그 유적과 유물이 밝혀주는 역사는 『환단고기』의 내용을 그대로 뒷받침하는 것들이었다. 『환단고기』의 내용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환단고기의 「삼성기」 상권과 하권, 「태백일사」의 환국본기에 의하면 중국 고대문명은 물론 서양문명의 근원이 되는 수메르 문명의 출원지가 바로 환국이다.
오늘 한국이라는 이름, 대한민국이라는 이름도 인류가 세운 최초의 나라인 환국에서 왔다. 『환단고기』 중 「삼성기」 상권의 첫 문장 ‘오환건국吾桓建國 최고最古’라는 구절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첫 나라를 선포하고 기록한 것이다. 환국은 광명한 삶을 인생의 가장 소중한 가치로 삼았다. 그래서 나라 이름도 광명을 뜻하는 환국이라 했다. 환국은 12개 나라의 연합체였다.[그림]
환국은 3,301년 동안 역사가 지속됐다. 오늘의 과학주의, 실증주의 사관은 유물론적 편향이 있어서 역사적 사실들의 이면, 즉 인류의 정신문화는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역사서들은 태고 문명이라 하면 그저 움집에서 열매나 따먹고 소박하게 살던 문화로 그려낸다. 그러나 환국 시대 사람들의 삶은 모두가 광명한 삶을 지향하면서 누구나 무병장수하던 장수문명을 누리던 것이었다.
환국을 계승한 환웅의 배달문명은 초기 도시국가로 시작됐다. 14세 자오지환웅, 곧 동방의 천자이던 치우천황 때는 산동성, 하남성, 강소성 등 지금 중국의 동부 지역을 배달국의 영토로 삼으며 제국을 이루었다. 배달에 이어 국통을 계승한 단군왕검은 기원전 2333년에 단군조선을 세웠다. 환국과 배달과 단군조선은 동북아 대륙을 통일하고 다스린 제국이었다.
◎ 고대 한국은 누가, 언제, 어떻게 발견했는가?
▶20세기 동북아 최대의 역사유적 발굴 사건이 일어났다. 현재 중국 영토 내 요서지역의 신석기·청동기 문화 발굴사업, 나중에 홍산문화라 불리게 된 그것이다.
1908년 홍산 일대 유적과 유물을 처음 발견한 이는 일본의 인류학자 도리이 류조(鳥居龍藏)이다. 그후 프랑스인 에밀 리쌍(E.Licent)도 1922년부터 1924년 사이 내몽골 적봉赤峰 지역에서 신석기 유적지 22곳을 발견했다.
그러고 나서 일본이 만주를 침략하던 1935년 동아시아 고적조사단을 만들어 예의 홍산 일대 본격 발굴에 들어간다. 일본이 무력침공 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의 문화를 침탈하려는 야욕이 감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일본은 이 같은 탐사 결과 출토된 유적을 일단 ‘홍산후紅山後 유적’이라 불렀다.
중국 역사학계가 이 유적을 조사, 발굴하게 된 것은 훨씬 뒤인 1980년대부터다. 이윽고 1983년 요령성 건평현建坪縣 우하량牛河樑 유적지가 발굴되면서 세계는 깜짝 놀라게 되었다. 이곳 유적지에서는 신전과 제단, 돌무덤 등이 함께 발굴됐다. 연대로 보면 세계 4대 문명의 하나로 꼽히는 중국의 황하문명보다 앞선 문명이었다. 이런 까닭에 홍산문화는 ‘제5의 문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홍산문화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중국은 오래 전부터 황하문명이 최고最古라고 주장해 오던 ‘황하 중심의 문명전파론’을 철회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리고는 부랴부랴 ‘다중심多中心 문화발전론’이란 것을 내놓았다. 더욱이 홍산문명이 한국의 고대문명을 일군 주인공인 동이족의 것이라는 사실을 감추고 ‘이것이야말로 중국의 요하문명’이라고 외치고 있다.
◎ 고대 환국은 얼마나 오래됐고, 어떻게 붕괴되었는가?
▶한국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보면 조선 왕조 이전에 고려가 있었고 고려 이전에 신라와 대진국(발해)의 남북국시대가 있었다. 또 그 이전에는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의 4국시대가 있었다. 이들 네 나라는 북부여로부터 기원해 갈라진 것이었다.
북부여는 진시황이 중국을 다스리던 시기 세워진 나라로 바로 이 나라가 한국의 고대국가인 단군조선을 계승한 것이다. 앞서 단군조선은 2천여년에 걸쳐 모두 47명의 단군들이 통치한 나라이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단군조선은 그보다 앞선 배달국을 계승했고, 배달은 또한 그보다 앞선 환국에서 나왔다.
『환단고기』에는 환국과 배달의 존속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기록이 실려 있다. 이에 따르면 배달은 기원전 3900년에 세워져 기원전 2333년까지 역사가 이어졌다. 또 환국은 배달보다 앞서 3,300년 정도 존속한 것으로 돼 있다. 따라서 환국의 역사는 기원전 7천년 이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환국은 12국의 연방으로 존재했다. 그 12국 각각의 이름이 『환단고기』에 그대로 전한다. 이들 12국 중 일부는 『환단고기』 뿐만 아니라 중국의 사서에서도 그 이름이 보인다.
중앙아시아 일대를 강역으로 삼았던 환국시대를 종식시킨 가장 중요한 요인은 기후의 변화였다. 학자들에 의하면 중앙아시아 지역은 지금부터 수천년 전에는 오늘날처럼 건조하지 않았다고 한다. 강우량이 풍부해 대단히 살기 좋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중앙아시아에는 적당한 비가 내려 질 좋은 초원이 유지되고 살기 좋은 곳이 곳곳에 산재한다.
환국의 기후가 전반적으로 건조해지고 사람들이 살기 어려워지면서 많은 주민이 환국의 동과 서, 남쪽으로 이주하였다. 배달을 세운 환웅족의 이주는 동쪽으로 옮겨간 경우이며 나중에 수메르 문명을 세운 수메르인들은 환국에서 서쪽으로 이주한 사람들이다.
환국이 사라지고 그 지역이 건조화 되면서 그 일대에는 물을 구할 수 있는 오아시스 지역이나 초원에만 사람들이 생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예전과 같은 국가는 찾아보기 힘들게 됐고 기원전 1천년 후반의 흉노 같은 유목국가가 등장하여 실크로드를 지배하기 전에는 부족 지배 형태가 국가체제를 대체했다.
최근 내셔널 지오그래픽 방송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는 것처럼 환국문명의 중심지였던 중앙아시아 동방 바이칼호 지역에서 인류 문명의 기원을 찾는 역사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 그 연구결과가 기대된다. 아시아 대륙을 지배했던 환국이 실재했음을 입증하는 유적과 유물은 앞으로 더 발굴될 것이다.
◎ 한국의 고대 문명의 유적은 어떻게 보존되고 있는가. 누구든지 그곳을 자유롭게 찾아볼 수는 있는가?
▶홍산문화 유적지는 누구든 방문이 가능하다. 바이칼호와 그 주변국들, 홍산문화 유적지에서 나온 유물들은 중국의 요령성 박물관, 내몽골 박물관 등 여러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물론 일부 유적지의 경우 중국 정부가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이라거나 유적지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개방하지 않는 곳도 많다.[그림] 이는 마치 과거 일본의 왕릉들이 일반인에 개방되었다가 그 무덤에서 나오는 유물들이 한반도의 백제계나 신라계의 것으로 판정되면서 개방을 하지 않게 된 것과 같다. 일본 정부는 일본 왕가의 뿌리가 한국의 역대 왕가로 귀속되는 것을 염려해서 일본 왕릉을 자국 국민에게도 개방하지 않고 있다.
◎ 한국의 고대 문명을 확인할 수 있는 유적지들을 오늘날 지도에서 살펴보면 어떤 지역들인가?
▶그 질문에 대답하려면 먼저 한국 고유문화 혹은 고유신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고대 한국에서는 신을 섬기고 신의 뜻과 가르침을 모든 삶의 근간으로 삼았다. 신의 가르침에 따라 삶을 꾸려갔기 때문에 이를 신교神敎문화라 부른다.
여기서 말하는 신은 한국의 전통에서 일신一神이 아닌 삼신三神으로 불리었다. 세 분의 신이 아니라 한 분의 신이 세 가지 방식으로 인류와 역사에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 삼신의 원리에 따라 한국의 고대 역사는 환국-배달-단군조선의 3단계, 세 시대로 진행됐다.
나아가 한국 고대사의 세 번째 왕조, 곧 단군조선은 그 영토를 셋으로 나누어 다스렸다. 이를 삼한관경제라고 한다. 삼한관경제는 4,300년 전 단군왕검이 우주의 근본법칙인 3수 원리에 따라 나라를 진한, 번한, 마한의 세 강토로 나누어 다스린 국가 경영체제를 말한다.
단군왕검은 대단군으로서 요동과 만주 지역에 걸쳐 있던 진한을 통치했다. 요서 지역에 있던 번한과 한반도에 있던 마한은 각각 부단군이 맡아 통치하였다. 마한은 하늘의 정신(天一)을, 번한은 땅의 정신(地一)을, 진한은 천지의 주인이요 중심인 인간(太一)을 상징한다.
이 같은 국가 경영체제로 단군조선의 도읍 역시 당연히 세 곳이었다. 진한의 수도는 아사달로 지금의 하얼빈이다. 번한의 수도는 안덕향으로 지금의 중국 하북성 당산시, 마한의 수도는 백아강으로 지금 북한의 평양 지역이다. 그보다 앞서 번성했던 배달국의 수도 신시神市는 오늘날 중국과 북한의 접경지인 백두산 주변의 광활한 땅이다.
단군조선 이후에도 줄곧 한국은 3수 원리를 중시해 왔다. 자연의 순환과 질서체계도, 또 극미한 원자에서 광활한 대우주의 구성과 본질 등도 이 3수 원리에 바탕해 모든 것을 설명한다.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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