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재난에서 살아남기
주역과 무극대도 | 하느님의 마음자리를 회복하는 , 지뢰복괘 본문
양陽 하나가 비로소 생기니
땅(☷) 속에서 우레(☳)가 태동胎動하는 모습을 괘상으로 나타낸 것이 주역 24번째 지뢰복괘地雷復卦(䷗)입니다. 왜 땅속에서 우레가 움직이는 것이 ‘회복한다는 복復’이 되는 것일까요? 어떤 상태가 극에 달하면 반작용이 나타나듯이 음陰의 기운이 극에 달하면 양陽이 생기고, 양의 극점에서 음이 되살아납니다.
그 예가 바로 지뢰복괘 앞에 있는 23번째 산지박괘山地剝卦(䷖)입니다. 박괘의 괘상을 보면 음효에 의해 다 깎이고 맨 위에 양효陽爻(⚊) 하나만 남아 있는데요. 그 남은 양효 하나가 땅에 떨어져 생명을 잉태하는 모습이 복괘復卦의 괘상입니다. 즉 땅[地,☷] 속에서 우레[雷,☳]의 에너지(⚊)로 시동始動을 걸어 본래 모습을 회복[復]하고 있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주역에서는 박괘의 하나 남은 양효(⚊)를 가리켜 ‘큰 과실’이라 하고, ‘큰 과실은 다 먹지 않고 남긴다(碩果不食)’고 하며 다음 괘인 복괘에 와서 씨앗이 되어 일양一陽이 시생하는 원동력으로 쓰입니다. 그래서 일양이 시생하는 동지冬至와 닮았다 하여 복괘는 동지 또는 동짓달을 상징하며 복월復月 혹은 자월子月이라고 합니다. 도전道典에서는 1년이 360일로 바뀌는 후천시대에 동지가 새해의 첫날이 된다고 합니다.
동지(冬至)가 후천 설이니라. (도전 2:138:5)
“동지는 천지의 모든 기운, 1년 기운을 다 받는 날이다.” (종도사님 도훈)
이 세상 이치는 한번 가면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낮이 가면 밤이 오고 그 밤이 지나면 또 낮이 오고, 따뜻한 여름이 가면 추운 겨울이 오듯 인생사 또한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는 등 세상만사가 모두 ‘음양의 순환’입니다. 궁극에 달하면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 있으며(極則反), 궁하면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窮則通).
그래서 서괘전序卦傳에서도 “박이라는 것은 깎는 것이니 만물이 다 깎여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박이 극에 이르면 아래로 돌아온다. 그러므로 (박괘 다음에) 복괘로 이어받고(剝者 剝也 物不可以終盡 剝 窮上反下 故受之以復)”라 하였습니다. 또 잡괘전雜卦傳에서 박괘는 ‘난(爛)’이라 하여 닳아서 해지는 것이고, 복괘는 ‘반(反)’이라 하여 ‘돌아오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박괘는 닳아 해지는 것이라 군자가 사라지는 암울한 세상을, 복괘는 다시 회복하는 괘라서 군자가 돌아오는 밝은 세상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박괘(䷖)를 거꾸로 놓으면 복괘(䷗)가 되고, 복괘(䷗)를 거꾸로 놓으면 박괘(䷖)가 되어 서로 도전괘倒顚卦입니다. 두 괘의 괘상, 괘의 등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이와 유사한 괘로 천지비괘天地否卦와 지천태괘地天泰卦가 그렇습니다. 선천 상극의 상징 천지비괘(䷋)가 있듯이 후천 상생을 나타내는 지천태괘(䷊)가 있습니다. 비괘와 태괘는 괘상卦象뿐만 아니라 괘명卦名까지도 서로 도전倒顚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일양이 시생하는 지뢰복괘와 정반대인 일음이 시생하는 천풍구괘天風姤卦를 비교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천지의 마음을 회복해야
그러므로 주역에서는 진리의 궁극인 도道조차 한번은 양운동陽運動을 하고 한번은 음운동陰運動을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一陰一陽之謂道).
그럼 회복한다는 지뢰복괘에서 ‘복復’은 무엇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일까요? 의리역義理易의 관점으로 보면 ‘하늘의 본성(天賦之性)’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만 정확한 뜻은 종도사님의 도훈 말씀에 그 해답이 담겨 있습니다.
“우주를 창조한 조물주인 삼신三神이 현실계에 자신을 드러낸 것이 하늘과 땅과 인간입니다. 천지인天地人이 바로 살아 움직이는 삼신 그 자체이며 하늘도 땅도 인간도 하나님의 생명과 신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중 인간은 온 우주의 거룩한 생명을 받아 내려서 하늘땅의 원대한 이상을 실현하는 유일한 주인공이므로 하늘땅보다 더 존귀하고 큰 존재라는 의미를 담아서 태일太一이라고 합니다.
이 태일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사례를 말씀드리면 태일문화는 솟터에 솟대를 세우는 문화인데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의 스와(諏方)신사의 마츠리를 보면 거대한 나무를 세우면서 ‘스와! 스와! 스와!’라고 외칩니다. 스와는 신라에서 소도문화가 내려간 것으로 경상도 사람들이 ‘세워, 세와, 세와!’라고 하던 말이 일본으로 건너가 ‘스와! 스와!’가 된 것입니다. ‘세우라’는 말입니다. 뭘 세워야 하나요? 우리의 뿌리를, 근본을 잃어버린 9천 년 국통맥을 바로 세워 역사정신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너의 잃어버린 천지부모의 마음을 세워야 합니다!
천지의 뜻을 받들어 상극과 불의의 역사를 바로잡고 장차 개벽 상황에서 인류를 건져 가을우주의 광명문화를 개척하는 열매인간이 태일太一이며, 태일인간이 되어야 천지의 꿈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하늘 아버지(상제님)와 땅 어머니(태모님)의 마음을 회복하여 진정한 태일이 되는 것이 우리 태을랑이 반드시 회복해야 할 과업입니다. 천지의 마음은 내 마음과 둘이 아니라 원래 한마음이었습니다.
천지는 나와 한마음이니 사람이 천지의 마음을 얻어 제 마음 삼느니라. (2:90:4)
우주 조물주의 본성이 우리의 참마음이라서 사람은 제 본성대로 하여야 하며, 조물주의 신성을 그대로 다 가지고 있기에 누구나 갈고 닦으면 천지와 같은 신성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몸가짐과 처사와 어습(語習)을 제 본성대로 할 것이요, 억지로 꾸며서 점잔과 교식을 내는 것은 삿된 일이니라. (8:74:11)
너희들도 잘 수련하면 모든 일이 마음대로 되리라. (3:312:10)
그러므로 천하사 성공의 관건은 바로 ‘본심本心 회복’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면 본심은 어떻게 회복해야 하나요? 그 해답은 바로 ‘태을주’에 있습니다.
태을주는 본심 닦는 주문이니 태을주를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깊어지느니라. (11:282:2)
다음은 복괘의 의미가 핵심적으로 담겨 있는 괘사입니다.
復(복)은 亨(형)하야 出入(출입)에 无疾(무질)하니 朋來(붕래)라야 无咎(무구)리라
복은 형통하니 출입에 병이 없어서 벗이 와야 허물이 없으리라.
反復其道(반복기도)하야 七日(칠일)에 來復(내복)하니 利有攸往(이유유왕)이니라
그 도를 반복해서 칠일에 와서 회복하니 갈바를 둠이 이로우니라.
지뢰복괘는 첫 출발이 천지를 흔드는 우레괘(☳)의 강건한 양효로 시작하므로 거칠 것이 없습니다. 복괘 이전은 소인배가 득실거리는 암울한 세상이었지만 이제 군자가 나와 희망의 시대가 열리므로 형통하다고 했습니다(復亨). 박괘剝卦 시대만 하더라도 소인배 세상이 되어 군자가 밀려났으나 이제 밝은 새 세상이 와서 세상에 나가든 초야에 있든 정의가 바로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소인배가 판치는 세상에서는 부정과 비리로 병들어 있었지만 군자의 시대에는 건강한 사회가 됩니다(出入无疾). 복괘는 일양一陽이 생겨나서 양들이 자꾸 늘어나므로 벗이 찾아온다고 하였습니다(朋來). 또한 복괘는 하늘의 본성을 회복하는 때이지만 아직 초창기라 진정한 군자의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어야 가능한 일입니다(无咎).
천지의 이법은 ‘순환의 도道’입니다. 천도의 운행을 보더라도 하루는 해와 달의 순환으로 낮과 밤이 반복하고, 일 년은 춘하추동으로 순환하여 이루어집니다(反復其道). 그리고 반복하는 순환의 틀이 바뀌는 주기가 칠일이라는 것입니다(七日來復). 칠七은 생명의 한 주기이며 천간에서도 7번째 경庚은 ‘고친다(更)’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일 년의 기본이 되는 주기가 바로 7일(월, 화, 수, 목, 금, 토, 일)로 이루어진 한 주週입니다.
또한 ‘칠일에 와서 회복(七日來復)’한다는 것은 1년 12달을 음양의 소식消息으로 표현한 것이 ‘12벽괘설僻卦說’인데, 이를 보면 일음一陰이 처음 생기는 음력 5월괘인 천풍구괘(䷫)에서 일양一陽이 시생하는 음력 11월괘인 지뢰복괘(䷗)까지 7개월로 보기도 합니다(아래 도표 참조).
박괘(䷖)는 음효(⚋, 소인)가 양효(⚊, 대인)를 다 갉아먹어 양효가 하나밖에 없으므로 군자가 뜻을 펼치지 못하니 이로울 것이 없는 것(不利有攸往)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복괘(䷗)를 보면 강건한 양효가 첫발을 내딛고 있어 앞길에 거칠 것이 없어서 복괘 같은 군자 시대에는 성인지도聖人之道를 펼치기가 이롭다(利有攸往)고 하였습니다.
대도의 씨가 태동하니
이제 상제님의 진리로 괘사를 해석해 보겠습니다.
병든 천지와 인간을 살려 내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구세주 하느님의 강세가 바로 지뢰복괘에 담겨 있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과 신명을 건지시기 위해 소생蘇生의 씨를 심은 것이 바로 복괘의 초구(박괘의 석과碩果)입니다. 판 밖의 남모르는 법으로 짜 놓으신 도수에 의해 세상에서 주목을 받지 못한 ‘조그마한 씨앗의 도과道果(증산도)가 태동胎動하여 온 천하를 상제님의 무극대도로 덮어 버리는 것’이 바로 ‘지뢰복괘가 세상에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상제님의 천하사를 이 땅에 성사재인하시는 인사의 지도자가 출현함을 복괘가 암시하고 있습니다. 주역에서는 중천건괘 단전에 나오는 “뭇 물건에 머리로 나옴에 만국이 다 편안하다(首出庶物 萬國咸寜)”는 글귀에서 ‘머리(首)가 되는 성인’이 후천개벽의 벽두에 한반도에서 출현한다(出)는 의미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사람만 있어도 나의 일은 이루어지느니라. (10:26:5)
이같이 하느님의 천지사업은 물샐틈없이 도수로 짜 놓아서 크게 이루어지므로 원형이정 중 여름의 덕성인 ‘형亨(통)’으로 표현한 것입니다(復亨). 인류사의 대전환기에 산이 겹쳐 있는(重艮山=出) 지구의 혈穴 자리 한반도(出)로 상제님이 강세(入)하셔서(出入) 추살의 대병란大病亂을 극복하는 일만 이천 명의 도통군자 등 천지의 녹지사들이 모여들어(无疾朋來无咎) 하느님의 통치이법인 음양의 도로써(反復其道) 큰 변화(천지개벽)의 주기를 상징하는 ‘7일’과 또한 ‘7’이 상징하는 칠성님(상제님)의 의통醫統으로 추살 개벽 현장에서 육임도군[六任道軍, 한 명의 지휘자 + 여섯 명의 일꾼, 북방 1^6(水)] 7명이 한 조가 되어 창생들을 살려냅니다(七日來復). 7명의 인간 천사에 의해 세상 사람들은 후천의 다리를 무사히 건너갈 수 있습니다(利有攸往).
“칠성은 삼신상제님이 계시는 별인 북두칠성이다. 달리 말해서 북두칠성은 대우주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별이다. 때문에 북두칠성은 우주의 중심별로서 천지일월과 음양오행을 다스리며 인간의 무병장수와 생사화복, 영원불멸, 도통과 깨달음을 관장한다”고 종도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북두칠성이 내 별이니라” 하시니라. (3:89:6)
동지와 크리스마스
매년 12월 25일이면 캐럴송이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는 동지와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 성자의 탄생일로 잘못 알려진 크리스마스는 동지에서 유래한 날입니다. 고대 페르시아에서는 밤이 가장 긴 날인 동지를 기점으로 밤이 짧아지고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12월 25일을 태양의 부활로 여겨 태양신(미트라Mitra)의 축일로 삼았습니다. 이 축일은 나중에 로마로 전래되어 서력 354년 교황 리베리우스가 예수 성자의 탄생일로 선포하면서 현재의 크리스마스가 되었습니다.
다음에는 괘사를 풀이한 단전을 보겠습니다.
彖曰(단왈) 復亨(복형)은 剛反(강반)이니 動而以順行(동이이순행)이라
단전에 이르길 “‘복형複亨’은 강剛이 돌아옴이니 동해서 순함으로써 행함이라
是以出入无疾朋來无咎(시이출입무질붕래무구)니라
이로써 나오고 들어감에 병이 없어서 벗이와야 허물이 없으리라.
反復其道七日來復(반복기도칠일내복)은 天行也(천행야)오 利有攸往(이유유왕)은 剛長也(강장야)니
‘그 도를 반복해서 칠일에 와서 회복함’은 하늘의 운행법칙이요 ‘갈 바를 둠이 이롭다’는 것은 강건함이 자라는 것이니
復(복)에 其見天地之心乎(기견천지지심호)인저
복復에 그 천지의 마음을 볼진저!”라고 하였습니다.
‘지뢰복이 형통(復亨)하다’고 한 것은 ‘강건한 양효(⚊)가 복괘의 초구로 돌아왔기 때문(剛反)’이며 복괘의 괘상은 내괘는 우레(☳)로 요동치고 있으나, 외괘는 곤괘(☷)로 유순합니다(動而以順行). 이처럼 복괘의 괘덕이 속으론 격렬하지만 겉으로는 부드럽듯이 군자는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대하고 자신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엄정해야 합니다(對人春風 持己秋霜).
새 기운이 움트는 동지冬至 때, 눈 내린 겨울은 적막한 것 같지만 깊은 땅속에는 따뜻한 양기가 태동하고 있습니다. 이같이 천지자연의 이법에 순응한다면 병통이 생길 리 없으며 양동음순陽動陰順하는 군자의 도를 행하면 뜻이 통하는 벗들이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그 도를 반복하고 7일 만에 회복한다’는 것은 ‘천도의 운행’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도(陰陽之道)를 반복한다는 것’은 하늘의 운행뿐만 아니라 세상 이치를 궁구해 보면 음양의 순환 이치를 벗어나는 것은 단 하나도 없음을 의미합니다.
하늘이 이치(理致)를 벗어나면 아무것도 있을 수 없느니라. (2:20:3)
‘반복기도’와 유사한 표현을 주역에서 찾아보면 ‘반복도反復道(중천건괘, 구삼 소상전) = 소식영허消息盈虛(산지박괘, 단전) = 반복기도反復其道(지뢰복괘, 단전) ⇨ ‘천행天行’이라 하였습니다. 이처럼 ‘음양의 순환 주기가 7일로 반복反復함이 천도天道의 운행법칙’이라 하였습니다. 천지살림을 주관하시는 우주의 통치자 하느님도 천지를 다스리는 근본정신이 ‘낳고(生)-기르고(長)-성숙(斂)-휴식(藏)’하는 순환 과정이라는 것을 온 천지에 질정하셨습니다.
나는 생장염장(生長斂藏) 사의(四義)를 쓰나니 이것이 곧 무위이화無爲以化니라. (2:20:1)
그리고 ‘가는 바를 둠이 이롭다는 것은 강함이 자라는 것이다’라고 한 것은 복괘가 양효 하나로 미비해 보이지만 시간이 감에 따라 모두 양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말합니다. ‘복괘에서 천지의 마음을 본다’는 것은 개벽의 이치로 설명하면, 지뢰복괘(䷗)는 월로는 자월子月(음력 11월, 동짓달)이고 시간은 자시子時이며 하늘은 자시에 열리고(天開於子), 지택림괘(䷒)는 월로는 축월丑月(음력 12월, 섣달)이고 시간은 축시丑時로 땅은 축시에 열립니다(地闢於丑). 이처럼 하늘이 열리고(天開) 땅이 열리는(地闢) 즉 천개지벽, 천지개벽의 이치는 천지의 본심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으로 천지의 마음이 개벽이란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지뢰복괘를 보면 천지 섭리로 오는 개벽의 이치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천지개벽도 음양이 사시(四時)로 순환하는 이치를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니 (2:20:4)
그 천지 마음을 본다(其見天地之心)는 것은 천지의 열매인 인간이 상제님께서 열어 주신 중통인의中通人義의 도통 세계를 통해 천지와 한마음이 되어 천지의 마음을 볼 수가 있음을 말합니다.
다음은 대상전을 보겠습니다.
象曰(상왈) 雷在地中(뇌재지중)이 復(복)이니 先王(선왕)이 以(이)하야 至日(지일)에 閉關(폐관)하야
대상전에 이르길 “우레가 땅속에 있는 것이 복이니 선왕이 이를 본받아 동짓날에 관문을 닫아서
商旅(상여) 不行(불행)하며 后不省方(후불성방)하니라
장사꾼과 나그네가 못 다니게 하며 임금 또한 지방을 순시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복괘의 괘상은 땅[地]속에서 우레[雷]가 요동쳐서 양기가 점차 회복[復]되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즉 땅속에 있는 우레의 에너지(陽氣)가 지상으로 나오려고 시동始動을 걸고 있는 것입니다.
선왕이 이 같은 복괘의 괘상을 보고 상서로운 양기陽氣가 생겨나는 동짓날에 혹시 삿된 기운이나 부정을 탈까 봐 도성의 문을 굳게 닫아 타지에서 들어오는 외지인 등의 출입을 하루 동안 금지시켰습니다.
고대 동서양에서는 태양이 부활하는 한 해의 첫날인 동지를 맞아 지난 한 해를 반성하고 새롭게 한 해를 맞이하기 위해 서원을 세우고 경건하게 보냈습니다.
이러한 벽사辟邪의 유습遺習은 지금도 동지가 되면 붉은 팥죽을 먹는 풍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왜냐하면 붉은색이 잡귀를 쫓아 주는 것에서 유래되어 팥죽의 붉은팥이 음귀陰鬼를 쫓는 데 효과가 있다고 믿어 왔기 때문입니다.
육효사를 보겠습니다. 초효입니다.
初九(초구)는 不遠復(불원복)이라 无祗悔(무지회)니 元吉(원길)하니라
초구는 멀지 않아 회복함이라. 뉘우치는 데이르지 않으니 크게 길하니라.
象曰(상왈) 不遠之復(불원지복)은 以脩身也(이수신야)라
소상전에 이르길 “멀지 않아서 회복함은 몸을 닦음으로써라.”고 하였습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지뢰복괘는 회복하는 괘인데 회복, 복원 그리고 부활의 첫 출발이 바로 복괘의 초구입니다. 그래서 복괘의 주효主爻가 되며 절기상으로는 진양眞陽이 비로소 생겨나는 때(一陽始生之節)라서 동지를 상징하며 나무로 치면 뿌리에 해당합니다. 멀지 않아 무엇을 회복하느냐 하면 하느님의 마음, 천심天心, 본심本心을 회복한다는 것이며 초구 또한 양 자리에 양효가 와서 뉘우치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크게 길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소상전에서도 초구가 본성을 회복하는 것은 ‘자신을 잘 닦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상제님의 진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후천 상생의 새 세상을 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오직 마음을 잘 닦아야 앞으로 오는 좋은 세상을 맞을 수 있다”(2:74:3)고 상제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천하사 성공의 관건은 바로 ‘본심 회복’에 있으며 태모님께서는 그 방법으로 “태을주는 본심(本心) 닦는 주문이니 태을주를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깊어진다”(11:282:2)고 하셨으며, 천하창생을 살려 내는 포교도 “먼저 몸 닦음(修身)을 근본으로 삼아야”(11:55:3) 한다고 하셨습니다.
불원복不遠復 태극기太極旗
초구와 관련하여 “불원복不遠復 태극기太極旗”가 있습니다. 이는 조선 말기 의병장 고광순高光洵(1848~1907) 선생이 일제와 싸울 때 ‘불원복(국권 회복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이라고 썼던 태극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전라도 구례 일대에서 항일운동을 벌이던 의병장 고광순은 멀지 않아 국권을 회복하리라는 신념으로 태극기에다 붉은 색실로 ‘不遠復’이라 수놓았습니다. 이 태극기는 당시 지리산 의병 진영에 나부꼈으며 의병들에게는 결사항전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습니다.
六二(육이)는 休復(휴복)이니 吉(길)하니라
육이는 아름답게 회복함이니 길하니라.
象曰(상왈) 休復之吉(휴복지길)은 以(이하인야)下仁也라
소상전에 이르길 “아름답게 회복해서 길한 것은 아래가 어짊으로써라.”고 하였습니다.
육이는 가운데 있고 음자리에 음효가 와서 중정中正합니다. 비록 음효라서 유약하지만 어진 군자인 초구가 곁에 있어서 육이를 배려해 주니 아름답게 회복할 수 있어 길하다고 하였습니다. 소상전에서는 강건하면서도 인의仁義를 겸비한 아래에 있는 군자(初九)의 덕화德化에 힘입어 육이 또한 중정지심中正之心으로 본심을 회복하니 길하다고 하였습니다.
六三(육삼)은 頻復(빈복)이니 厲(여)하나 无咎(무구)리라
육삼은 자주 회복함이니 위태로우나 허물은 없느니라.
象曰(상왈) 頻復之厲(빈복지려)는 義无咎也(의무구야)니라
소상전에 이르길 “자주 회복해서 위태롭다는 것은 그 뜻이 허물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육삼은 가운데 있지도 않고(不中) 음효가 양 자리에 와서 제자리도 아니고(不正) 또 내괘에서 외괘로 넘어가는 자리라서 위태롭습니다. 또한 서로 응하는 상육과는 같은 음효라서 불응不應하고, 초구에게 도움을 받고자 해도 가운데 육이가 가로막아 만날 수도 없습니다. 이런 불리한 여건으로 인해 육삼의 마음이 자주 바뀌어(頻復) 불안하고 위태로워 보입니다(厲).
하지만 변덕을 자주 부려 위태롭기는 해도 회복 단계에 있으므로 허물이 될 수는 없습니다.
六四(육사)는 中行(중행)호되 獨復(독복)이로다
육사는 중으로 행하되 홀로 회복하도다.
象曰(상왈) 中行獨復(중행독복)은 以從道也(이종도야)라
소상전에 이르길 “중으로 행하되 홀로 회복함은 도를 좇음으로써라.”고 하였습니다.
육사는 음효가 음 자리에 와서 제자리에 있지만 가운데 효(中爻)가 아닌데도 중행中行이라고 한 것은 유일한 양효인 초구를 제외한 다섯 음효(육이~상육) 중에서 가운데에 있기에 중도를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육사는 유일하게 초구(군자)와 정응正應이 되어 그 초구의 덕화德化로 본심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소상전에서도 육사가 중도의 도를 회복할 수 있는 것은 초구와 바르게 응하므로 그 덕에 힘입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六五(육오)는 敦復(돈복)이니 无悔(무회)하니라
육오는 두텁게 회복함이니 뉘우침이 없느니라.
象曰(상왈) 敦復无悔(돈복무회)는 中(중이자고야)以自考也라
소상전에 이르길 “두텁게 회복해서 뉘우침이 없다는 것은 중中으로써 스스로 상고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육오는 외괘의 가운데 자리에 있으며 군왕의 자리에 있어 능히 두텁게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음효이지만 밝은 양 자리(五爻)에 있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지혜가 있으므로 두텁게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육오 자리는 웬만큼 본심을 회복하였기에 스스로를 뒤돌아볼 수 있는 여유까지 있습니다.
上六(상육)은 迷復(미복)이라 凶(흉)하니 有災眚(유재생)하야 用行師(용행사)면 終有大敗(종유대패)하고
상육은 아득히 회복함이라. 흉하니 재앙이 있어서 군사를 쓰면 마침내 크게 패함이 있고
以其國(이기국)이면 君(군)이 凶(흉)하야 至于十年(지우십년)이 不克征(불극정)하리라
그 나라로써 하면 군왕이 흉하여 십 년에 이르러도 능히 정벌하지 못하리라.
象曰(상왈) 迷復之凶(미복지흉)은 反君道也(반군도야)일새라
소상전에 이르길 “아득히 회복해서 흉하다는 것은 군왕의 도에 반한다.”고 하였습니다.
상육은 회복력의 근원인 초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고 끝자리에 있어 아득하게 회복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회복하길 기대할 수 없습니다(迷復). 그래서 흉한 것입니다(凶). 결국 사람이 본심을 상실하여 마음이 흩어지면 끝내 천재나 인재 같은 재앙이 닥칩니다(有災眚). 전쟁을 하는 군대 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정신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군대는 백전백패합니다(用行師 終有大敗). 크게 보면 한 국가의 경우도 국민의 마음이 모이지 않고 흩어진다면, 즉 국론이 분열되면 아무리 지도자가 유능해도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以其國君凶至于十年不克征). 무형의 정신이 흩어져 있는데 유형의 몸뚱이가 뭉칠 수 없습니다. 소상전에서는 누구든지 본심이 미혹된다면 군자의 도를 행할 수가 없어 흉하며 소인의 도밖에 행할 수 없습니다(迷復之凶 反君道也).
태모님 말씀으로 지뢰복괘를 정리하겠습니다.
태모님께서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마음을 잘 닦으라” 하시고 “마음 불량한 놈은 병으로 솎으리니 오방신장 늘어서서 신명 맞이할 때 너희들 정신 차리기 어려우리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장차 후천을 당하여 닦지 않은 자는 죽이지는 않으나 신명들이 다 알고 목덜미를 잡아 끌어내느니라. 평소에 거짓말하지 말고 본심을 잘 지켜라. 태을주를 열심히 읽고 상제님을 잘 섬겨야 좋은 세상을 보게 되느니라.” 하시니라. (11:23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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